박정희 친일과 경제성장의 공을 따지는 것은 의미없는 것--( 펌글 )
수구집단은 이번 친일인명사전에 대해서 조작이고 날조라며 흥분하고 있다. 그러나 명백하게 드러나있는 사실을 부정한다고 이것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박정희의 경우는 생계형 친일이 아닌 자발적인 친일이고, 그의 혈서와 편지나 졸업생 대표로 한 충성서약을 보더라도 친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상당히 궁색한 것이다.
수구단체들은 친일에 대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경제성장에 기여한 공이 크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발언도 내놓고 있다. 그런데 과연 박정희는 경제성장에 기여를 했는지를 따져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는 일종의 신화와 같은 인물로 추앙되고 있고, 일부 수구단체에서는 거의 절대적인 모습까지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진실을 알려준다고 하여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보고싶은 것만 보고 그것만 믿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박정희 신화의 허구성을 따져본다.
박정희는 교사를 하다가 만주군관학교와 관동군 일본군 사관학교를 거쳐 만주군으로 항일단체를 토벌하는 임무를 맡은 부대의 장교생활을 했다. 여기서 수구단체들이 우기는 것은 박정희가 소속된 부대가 토벌해야 했던 상대가 독립군이 아닌 팔로군이었기 때문에 친일피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팔로군은 중국 공산당이 주축이 된 항일단체였다. 팔로군에는 중국인들만 있던 것이 아니라 조선인 부대도 있었다. 그들은 좌파계열의 독립군이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고, 무시를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째든 박정희는 엄연히 임시정부의 적대국의 장교였고, 일제를 위해서 충성을 다한 인물이었다. 그러던 박정희는 해방 후 정체를 숨기고 광복군에 숨어들어갔고, 귀국하여 국군 장교가 된다. 그리고 남로당 군사책으로 활동하다 여순반란 때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이승만에 의해 득세를 한 군 내부의 친일파에 의해서 사면되고 군으로 복귀를 하게됐다. 이때 남로당에 가담한 군부의 주요인물을 폭로하여 살아났다는 말이 있는데, 이 부분은 명확히 확인 할 수 있는 문헌이나 자료를 필자가 발견하지 못해 일단 제외하였다.
그후 자유당 정권이 몰락하고 장면, 윤보선 정권이 들어섰지만 1961년 5월 16일 박정희에 의해서 정권은 찬탈을 당했다. 군인생활을 했던 박정희는 사실상 정치나 경제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고, 그에 따라 이렇다할 정책을 내놓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박정희의 선택은 친일파였던 장면 총리의 경제개발계획을 가져다가 수정해 내놓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원은 없지만 경제 성장을 요구하는 후진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저임금을 통한 저가상품 생산에 치중하게 된다. 소위 말하는 노동집약적 산업이었다. 여기서 전후 일본과 비교를 한다면 경제성장 모델이 어떻게 달랐는지를 알 수 있다.
일본은 2차대전 패망 후 폐허에서 일본 경제의 위상을 높이는 방법으로 기술력을 우선했다. 기술 선진국들의 제품들을 데드카피하면서 그것을 한 차원 발전시키는 방법으로 기술을 축적하고 그것은 다시 독보적인 기술로 발전시키면서 경제성장을 이끌 었다. 그에 비해 박정희 정권이 선택한 것은 오로지 저임금으로 저가의 상품을 만들어서 해외에 판매하는 것과 공해산업, 현대로 대표되는 해외 토목사업으로 경제발전을 유도했다. 그 결과는 어느정도의 경제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었지만 그 경제성장이 오히려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 것이다. 경제성장에 따라 노동자들의 임금은 상승해야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상품의 가격이 상승하고, 그 상품이 품질이나 가격에서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고혈을 짜내서 이룩한 경제성장인 것이다. 이것은 박정희의 공덕이 아닌 그렇게 착취당하고 고혈을 짜내면서도 일을 했던 노동자들이 성장을 이끌었다고 보아야 마땅한 것이다.
박정희식 경제성장 모델은 결국은 한계에 봉착하고 커진 경제규모를 지탱할 수 없게 만들어서 오히려 경제위기를 불러오게 되는 저질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박정희의 경제성장의 공이라는 것은 부질없는 것이고, 허구라고 할 수 있다. 재벌기업들과 정경유착과 강탈한 것을 재산으로 축적을 했다는 점에서 청렴한 것도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장기집권을 하기 위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독재를 위해서 공포정치를 펼쳤던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최악의 대통령이었다고 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사실상 박정희의 공이라는 것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반대를 무릅쓰고 경부고속도로 놓았다는 것 정도 공이라고 해줘야하나 싶다.
수구단체들은 역사가 평가할 것이니 지금 친일에 대해서 평가한다는 것은 안된다고 주장하는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박정희에 대한 평가 역시 역사의 한 페이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이 역사에 맡기자는 것은 더 자세히 알 수 없는 미래로 미루어서 모든 것을 퇴색시키자는 소리나 다름 없는 것이다.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제대로된 평가가 나와야하는데 아직도 박정희 신화에 세뇌되어 정신을 못차리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이 부분도 난항을 겪고 있다. 그러나 박정희의 공은 현실이 아닌 만들어진 신화라는 것은 분명하다.
최근 재밌는 것은 박정희에 대한 재평가와 박정희의 친일에 대한 부분이 부각되면서 친박근혜 쪽은 발끈하고 나서는데 비해서 친이명박 쪽은 느긋하게 관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 같았으면 발끈하고 나섰을 일부 개신교들도 너무나 조용하다. 역시 수구는 기득권에만 미쳐 날뛰는 것이 수구라는 것이 다시 한 번 알 수 있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