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의이유

한민족의 한단시대 - 제2장 배달국시대(5. 탁록의 대전)

InsertCoin 2008. 9. 30. 13:11

< 한민족의 한단시대 >


5. 탁록의 대전

치우천황은 구군(九軍)에 명을 내려 네 갈래로 나누어 출동케 하고, 자신은 보병과 기병 3000명을 직접 이끌고, 탁록의 유웅이라는 벌판에서 헌원과 계속 싸우면서 사방에서 압축하여 공격했다.

또 붉은 색 염초를 태워 큰 안개를 일으키고 지척을 분간하지 못하게 하면서 싸움을 독려하니, 헌원군은 마침내 두려워 혼란에 빠졌으며, 목숨을 건지고자 숨기에 바빴으며, 백리 안에 병사와 말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 당시 서쪽에 살던 지나인들은 화살과 석기와 사람수의 힘만을 믿었는데, 철제무기와 갑옷 그리고 안개를 일으키는 전법을 만나자, 치우천황의 법력이 높고 강력함에 크게 놀랐으며 간담이 서늘하여 싸울 때마다 패했던 것이다.

천황은 더욱더 군사의 진용을 정비하여 4개 방면으로 진격하며 헌원과 10년 동안 73회나 싸우기에 이르렀는데 장수들은 피로의 기색이 없고 군사들은 물러설 줄을 몰랐다. 그 정도로 싸워도 계속해서 지므로 헌원의 원한과 증오심이 더욱 커졌다.

헌원은 병사와 말을 더욱 크게 일으켜서 배달국의 병력을 본 따서 병기와 갑옷을 대량으로 만들고 지남차라는 전투용 수레도 만들어 감히 치우천황과 맞서 싸움터마다 출전하였다.

치우천황은 진노하여 형제들과 종당(집안 친척들로 구성된 집단)들을 지도자로 하여 싸움의 준비에 힘쓰도록 하면서, 위세를 떨쳐 헌원의 군사들이 감히 덤비지 못하게 하려했다.

한바탕 크게 싸움이 일어났고 혼란한 가운데 1진을 제압한 후에야 비로소 전투가 멈추었는데, 이 싸움에서 우리 쪽 장수 가운데 치우비(蚩尤飛)라는 장수가 공(功)을 서두르다가 불행히도 진이 무너져 죽게 되었다. 사기(史記)에서 말하는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고 기록한 대목은 이를 말한다.

치우비의 사망을 보고 받은 치우천황은 크게 노하여 무기 만드는 전문가를 시켜, 돌을 날려보내는 무기를 새로이 만들어 진을 치고 나란히 공격하니 헌원의 진지에서는 끝내 저항할 능력조차 없게 되었다. 이 대목을 중국의 관자(管子)는 "천하의 임금이 전장에서 화를 한번내자 쓰러진 시체가 들판에 그득했다" 고 표현했다.

이후 치우천황은 연의 회대 지역을 완전히 점령하기 위해 탁록에 성을 쌓고 회대지방을 차지했으며, 그렇게 되자 헌원의 부하들은 신하되기를 원하며 찾아와 조공을 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