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삼한관경제와 단군조선의 변천 >
- 삼한관경(三韓管境)제 -
한국시대 12연방은 신시시대에 9한(桓) 64민(民)이 되었고, 단군조선 시대에 다시 삼한(三韓)으로 나누었는데, 삼한(三韓)은 진한(辰韓), 마한(馬韓), 번한(番韓)을 말하며, 오가(五加) 64족을 모두 포함하였다.
이러한 내용이 <한단고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왕검 역시 하늘에서 내려와서 불함산에 사시니, 나라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받들어, 단군으로 모시어 이를 단군왕검이라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극히 신묘하고 성스러워서 구한(九桓))의 삼한관경(三韓管境)을 모두 통합하였다.」 <한단고기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
「신시개천(神市開天)에서부터 18세를 전하여 1,565년이 흘러서 비로소 단군왕검이 나셨다. 웅씨의 비왕( 王)으로서 마침내 신시에 대신하여 구역(九域)을 통일하고 관경(管景)으로 삼한(三韓)을 나누었으니 이를 단군조선(檀君朝鮮)이라고 한다.」 <한단고기 신시본기>
초대 단군 왕검께서 우리 민족을 통일하고 만주 중앙인 진한(辰韓)은 아사달(阿斯達)에서 직접 통치하시고 웅씨의 족장인 웅백다(熊伯多)를 마한(馬韓)으로 삼아 왕검조선(진한)의 동쪽인 연해주, 한반도, 대마도, 구주를 다스리게 하였고, 치우천왕의 후손이었던 치두남(蚩頭男)을 번한(番韓)으로 삼아 왕검조선(진한)의 서쪽인 중국의 북부지방 및 만주남부지방, 청천강 이북 지금의 평안도 지방을 다스리게 하였다. 마한(馬韓)과 번한(番韓)은 나라 또는 통치자 명칭으로 같이 사용하였다.
이러한 내용이 한단고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단군왕검은 천하를 평정하시더니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관경(管景)을 만드시고 곧 웅백다(熊伯多)를 봉하여 마한(馬韓)이라고 하였다. 달지국(達支國)에 도읍하였으니 역시 백아강(白牙江)이라고도 불렀다.」<한단고기 삼한관경본기 마한세가 상>
「치두남(蚩頭男)은 치우천왕의 후손으로 지혜와 용기가 뛰어나게 세상에 알려졌다. 단군은 곧 불러보시더니 이를 기이하게 여기시고는 곧 그를 번한으로 임명하고 겸직하여 우(虞)의 정치를 감독하게 하였다.」<한단고기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상>
즉, 하나의 나라지만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를 썼다. 삼한으로 나누어서 국토를 관리했다. 삼신일체(三神一體), 천지인(天地人) 사상의 원리에 따라 나라(體 : 형체)는 하나(一)이지만 관리(用 : 쓰임)는 셋(三)으로 했던 것이다.
<한단고기>중「단군세기」에는 삼한 중 단군이 직접 다스린 진한의 역사가 담겨 있으며,「마한세가 상, 하」,「번한세가 상, 하」에는 진한의 좌·우현왕이었던 마한(馬韓)과 번한(番韓)의 역사가 담겨있다.
- 단군조선의 변천 -
그런데 고조선은 삼 단계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다.
첫째, '송화강 아사달 시대'인데, '송화강 아사달'은 하얼빈으로 비정한다. 초대 단군왕검 때부터 21대 소태 단군 때까지(B.C.2333∼B.C.1286) 1048년간을 말한다.
둘째, '백악산 아사달시대'인데, '백악산 아사달'은 지금의 농안 장춘 지방으로 비정한다. 22대 색불루 단군시대 때부터 43대 물리 단군 때까지(B.C.1285∼B.C.426) 860년간을 말한다.
「단군 색불루(22세, 병신년 B.C.1285∼계미48년 1238)가 아버지께서 이루어 놓으신 힘을 계승하여 대병(大兵)을 장악하니, 진한(辰韓)은 스스로 무너졌고 나머지 두 한(番韓·馬韓)도 역시 이길 수 없어서 패해 버렸다. 전제(前帝 : 21시 단군 소태)는 사람을 시켜 옥책(玉冊)과 국보를 전하여 제(帝)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새 임금이 백악산(白岳山)에 도읍을 골라 세우니 여러 욕살들이 아무도 승복하지 않았으나. 여원흥(黎元興)과 개천령(蓋天齡) 등이 명을 받아 저들을 설득했다. 이에 모든 욕살들이 빠짐없이 따르게 되었다. 병신원년(B.C.1285) 정월 마침내 녹산(鹿山)에서 즉위하니 이곳을 백악산 아사달이라고 한다.」<마한세가 하>
셋째, '장당경 아사달시대'인데, '장당경 아사달'은 장춘 지방 근처의 개원현(지금의 개원시)으로 비정한다. 44대 구물 단군 시대부터 47세 고열가 단군 폐관까지(B.C.425∼B.C.238) 188년간을 말한다. 44세 단군 구물(丘勿)때 국호를 고쳐 대부여(大夫餘)라 하고 삼한(三韓)을 고쳐 삼조선(三朝鮮 : 막조선(莫朝鮮), 번조선(番朝鮮) 진조선(眞朝鮮))이라 하였다.
「5월 제도를 개정하여 삼한(三韓)을 삼조선(三朝鮮)이라 하였다. 조선(朝鮮)이란 관경(管景)을 말한다. 진조선(眞朝鮮)은 천왕이 친히 다스리니 그 땅은 곧 옛날의 진한(辰韓)이다. 삼한(三韓)이 모두 하나같이 명령에 복종하였다. 여원흥(黎元興)에게 명하여 마한(馬韓)이 되어 막조선(莫朝鮮)을 통치케 하고 서우여(徐于餘)로 하여금 번한(番韓)을 삼아 번조선(番朝鮮)을 통치케 하였다. 이를 통틀어 이름하여 단군(檀君)의 관경(管景)이라 한다. 이것이 곧 진국(辰國)으로 역사에서 말하는 단군조선이다.」<마한세가 하>
그런데 세 아사달 시대에 관한 기록이 국내에도 단편적으로 나온다. 예를 들면
서거정의 <동국통감>에 단군의 수명은 1,048세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송화강 아사달시대'만 얘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김부식의 <삼국유사>에 단군의 수명은 1,908세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송화강 아사달시대' 1048년에다 백악산 아사달시대 860년을 합한 기간을 얘기하는 것이다.
기자조선(箕子朝鮮)은 전국시대인 B.C. 323년에 왕검조선의 번한(番韓) 지역에 거주한 수유족(須臾族)의 우두머리 기후(箕 )가 번한 지역을 장악하여 칭왕(稱王)한 나라이다. 단군조선 폐관(B.C.238)이후 기자조선은 위만(衛滿)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멸망(B.C.194)하게 되고, 그 뒤 한수 남쪽에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이 존재하게 된다.
그런데 일제시대에 단군시대의 역사를 말살하면서 존재시기와 영역이 전혀 틀림에도 불구하고 단군시대의 삼한(三韓)을 없애버리고 연대를 낮추어 한반도 영역 안으로 축소시켰던 것이다.